양규 장군 – 고려거란전쟁 16회 전사

양규 장군, 김숙흥 무장은 고려거란전쟁 16회에서 고슴도치 처럼 온몸에 화살을 맞고 전사 하였습니다.


고려거란전쟁 16회 시청률

7일 일요일 KBS 2TV에서 방영된 대하 드라마 ‘고려거란전쟁’ 15회에서 10.2%, 16회에서 시청율 10.0%(닐슨코리아 제공, 전국 기준)을 기록하였습니다. 거란 본군이 쏜 화살을 맞는 장면에서는 11%까지 순간 시청률이 상승하였습니다.


거란의 2차 침입으로 부터 고려를 구한 양규 장군 그는 누구인가?

도순검사 양규는 강동 6주의 최전방인 흥화진에서 불과 수천명의 병사로 40만의 거란족과 맞서 싸웁니다. 그것도 무려 일주일간이나 막아냅니다.

최전방지에서 방어에 성공한다는 것은 수비측에 엄청난 이득이고 공격측은 엄청난 손실일 수 밖에 없습니다.

이에 강한 성을 만나면 우회하는 전략을 가지고 있는 거란 군은 20만 대군을 남기고 나머지 20만 대군으로 남하를 계속합니다.

통주로 향한 거란군은 이후 강조의 30만 고려군과 싸움을 하게 됩니다. 첫 번째 전투에서 검차를 이용해 고려군이 승리하였지만 2번째 전투에서 검차를 너무 믿은 탓이었을까? 강조가 포로로 잡히고 고려군은 3만의 전사자를 내며 뿔뿔이 흩어지게 됩니다.

이후 고려황제도 개경을 버리고 도망가고 있는 상황에서 양규가 700명의 군사로 5000명의 거란군이 점령한 곽주를 탈환하게 됩니다.

이 전투로 거란은 철수를 결정하게 됩니다.

조선시대에 이순신 장군이 있어 임진왜란을 막았다면 고려거란 2차 전쟁에서는 양규의 활약으로 거란족을 막아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양규 장군, 고려거란 2차 전쟁의 마지막 게릴라전

거란족은 말을 잘 다루는 기병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전쟁에서는 기동력이 승패를 가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요즘 전쟁이 빠르게 끝나는 것은 전투기 때문입니다. 전투기가 주요 시설을 먼저 타격하고 보병이 들어가서 점령하면 끝나게 되는 것입니다.

기병은 지금 시대의 전투기 같은 역할을 했습니다. 진을 짤 때 상대 군의 후미로 돌아서 포위를 하여 섬멸하거나 상대 군의 진영을 돌파하는 전법이 주로 쓰였습니다.

위의 사진을 보면 군대가 일렬로 길게 늘어서게 되고 산이 둘러 쌓여 있어 기병의 장점을 사용하지 못하는 지형임을 알 수 있습니다.

양규의 고려군은 귀주 협곡의 좁은 지형을 사용하여 적을 고립 시키고 주변의 산세를 이용해서 게릴라전을 펼치며 거란족으로 끌려가는 고려인 포로 3만명을 구해냅니다.

이는 별다른 자원이 없었던 고려 시대에 3만명의 인력을 확보함으로써 거란족의 힘은 약화시키고 고려 군의 국력을 증강 시키는 나비 효과를 가져오게 됩니다.

마지막 포로를 구할 때 거란 군의 성종이 이끄는 본대를 만나게 되고 포로들이 도망갈 시간을 벌어주기 위해 전투에 임합니다.


양규 장군 역대급 전투 장면과 지승현 배우의 열연, 그리고 긴 여운

“지금까지 모두 잘 싸웠다. 너희들의 용맹한 모습을 만 백성이 기억할 것이며 온 산천이 기억할 것이며 이 고려가! 영원토록 기억할 것이다! 그동안 고마웠다.”

양규 장군 - 고슴도치 처럼 활을 맞은

“열 보 부족해, 열 보.. 열. 아홉. 여덟. 일곱!! 여섯. 다섯. 넷. 셋…”


철군하는 거란군을

양규는 원군도 없이
한달 사이 일곱 번 싸워
수많은 적군의 목을 베었고
포로가 되었던 3만여 명의
백성들을 되찾았다.

양규와 김숙흥은
화살을 고슴도치처럼 온몸에 맞고
함께 전사하였다.

-고려사 권94, 양규 열전 발췌


고려거란전쟁 촬영 후기 사진들

양규 장군 죽음 촬영 중 - 이날 촬영일에 영하 10도의 추위였다고 합니다.
이날 촬영일에 영하 10도의 추위였다고 합니다.
실제로는 거란군도 고려군도 화목했던 촬영장 분위기
거란군도 고려군도 화목했던 촬영장 분위기
양규 장군 죽음 촬영일에 생일이었던 지승현 배우

가슴 뭉클하게 만들며 눈시울이 붉어졌던 고려거란전쟁 16화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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